No category 2010/08/27 04:33



몇시간을 잤는지 감각이 없어질 정도로 잤다.

아침 10시 즈음 일어났는데, 지금이 아침인지 점심인지 저녁인지도 모르겠을 정도였다.
마치 시간이라는 것이 없어진 공간에 떠다니는 듯한 느낌이었다.


몸이 알아서 움직이고 머리가 알아서 돌아가는 듯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일을 했다.

점심에는 시오버터라멘을 먹었다.
느끼한 듯 개운한 맛이었다.


몸에 벤 듯 메일 확인을 했다.
일거리는 늘어나기도 했고 줄어들기도 했다.




목이 말랐는데, 목이 아파서 마음껏 마시지 못했다.
그래서 사이다를 마셨다.



택시를 타고 압구정동에 가서 미팅을 했다.

무슨 말을 했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묘하게도 결론은 났고 정리는 끝났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는 뒷좌석에서 잠을 잤다.
지금 생각해보니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사내를 뒤에 태우고
단 한번 말한 행선지만을 듣고서는
뒤에서 자고 있는 저 사내가 당연히 댓가를 지불할 것이라 생각하고
우직하게, 신속하게, 안전하게 그 한번 말했을 뿐인 행선지로 사내를 데려다 주는

이 놀라운 시스템은 도대체 어떤 뜬금없는 신뢰감을 바탕으로 돌아가고 있는 건지 신기했다.




압구정동에 도착했다.

도착했다고 전화를 하려는데 배터리가 나갔다.




우연찮게 어찌저찌 거래처 담당 팀장이 나와서 문제 없이 미팅을 마쳤다.

무슨 말을 했었는지.. 이말은 아까 했다.




배가 고팠다. 바로 저녁 미팅으로 이어졌다.




만나기로 한 업체 사장님들 중 한명이 먼저 왔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다른 사장이 얼마전에 머리속에서 핏줄이 터져서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


나보고 미리미리 조심하라고 했다.
지금 조심하는게 미리미리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 사장은 생일 바로 다음날 쓰러졌다고 한다.
아직 해야 할 일은 산더미 같이 쌓여있었고 - 마치 나처럼 - 모든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려 하지 않고
혼자 다 짊어지고 있었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아 역시 혼자 일을 다 짊어지면 안돼, 라고 생각한 내가 서글펐다.
그런 다짐은, 아무때나 뇌출혈로 쓰러져도 되기 위한 다짐이잖아, 라고 생각했다.




저녁엔 파스타를 먹었고,
쓸데 없이 비트를 갈아넣어서 분홍색으로 만든 크림이 거슬렸다.

밥을 먹으면서, 11가지 프로젝트를 정리했고
그러다가 페스티벌 섭외 전화를 받았다.




거슬리는 파스타는 반 정도 먹지 못한 채
남은 얘기를 하다보니 웨이터가 반 정도 남은 파스타를 가져갔다.




또 택시를 탔다. 이번에는 잠들지 않았다.




휴대폰이 꺼져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아픈 목을 골골거리며

80만원짜리 기계로 5천원짜리 만화를 봤다.
한 10권쯤 봤으니 5만원어치 쯤 본 셈이다.

100만원짜리 식기세트에 라면을 담아 먹으면 이것 보다 더 우스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 점점 모호해져만 간다.


그래도 모호하다는건 깨달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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